= 2010/03/01 =
빠르고 질 좋지만 저렴한 서비스, 과연 좋은걸까?
<펌>=>> http://carany.egloos.com/5257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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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후진국이다.
내가 종종 하는 농담이다. 영국에 처음 왔을 때의 충격이란.. 한국, 특히 서울만큼이나 살기 편한 곳은 없다.
영국은 인터넷도 느리고, 신기술도 늦게 보급된다. 인터넷 설치하는데 신청일로부터 2주일 후에 와서 설치해주고, 하수구 막혀서 기술자를 부르는데 며칠 후에 온다고 하거나, 아직 다섯시 반인데 곧 퇴근할거라 내일까지 기다리라거나, 지금 당장 와주기를 바라면 어마어마한 돈을 내라고 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경비실이 있지만, 경비아저씨가 경비의 개념이 아니라 관리실의 개념이라서 관리자가 24시간 근무는 커녕 평일 출근에 목요일은 12시에 퇴근하신다. 배송서비스도 느린 편이다. 2~3일 걸려서 도착한 소포는 빨리 도착한거다. 빠른 배송이 2일정도 걸리는 경우가 많다. 주말에 주문했다면 4일이 걸리기도 한다. 아마존에서 일반 택배를 주문하면 1~2주가 걸리기 마련이다. 서비스업도 엉망이다. 우리나라처럼 사람들이 무조건 손님이 왕이라면서 내가 짜증을 내면 "네네네네네 죄송합니다 고객님, 지금 당장 해결해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이 좀처럼 안 나온다. 보통은 "규정에 의하면 어쩌고.."하면서 일단 발뺌부터 하고 본다. 이게 상대편 잘못이면 정말 환장을 한다. 이케아에서 배달해 온 가구가 불량인데, 새 가구 배달은 괜찮지만, 불량가구를 버리는건 내 역할이라던가(여기는 가구 버리는데 세금을 내야 한다)하면, 정말 짜증이 난다. 병원, 미용실 기타등등 대부분 다 미리 예약해야 된다. 직접 가서 지금 당장 하고 싶은데요. 이런게 통하는 곳은 많지 않다.
우리동네는 브라이튼이라는, 도시 규모는 작지 않지만 시내가 발로 걸어 30분에 가로지를 수 있는 자그마한 곳인데, 토요일은 5시부터 가게가 다 문을 닫는다, 평일에도 6시를 넘는 가게가 많지 않다. 크리스마스엔 문을 여는 가게가 없다. 대중교통도 다니지 않는다. 나처럼 같이 크리스마스를 지낼 가족도 없어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나 만끽하자고 12월 25일에 거리를 나가보면 10월부터 온 동네에 울려퍼지던 캐롤송도 없이 그냥 적막하기만 하다. 그나마도 시내까지 걸어서 나갈 수 있는 거리에 살고있으면 말이다.
영국은 선진국 아닌가요, 살기 좋겠네요? 라는 말에, 나는 저런 불평을 하면서 늘 "영쿡은 후진국이랍니다." 하고 농담을 한다. 내가 본 바로 영국이 노르웨이만큼이나 살기 좋아보이지는 않았지만, 영국도 살아볼만한 나라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영국이 후진국(?)이기 대문이다.
서비스를 받고 있을 때는 빠르고 질좋고 저렴한 서비스가 좋지만, 온 국민이 그런 서비스를 받고 있을 때는, 온 국민이 그런 서비스를 제공해야 된다. 24시간 대리운전. 얼마나 편한가. 술마셔도 누가 대신 운전해주고, 미리 예약할 필요도 없고, 전화만 쌩하면 한밤중에도 바로바로 달려온다. 그렇게 비싸지도 않다. 하나로에 전화해서 인터넷이 이상해열, 이러는데 전화로 해결이 안되면 다음날 아침에 바로 쌩- 달려온다. 바로바로 해결해준다. 돈도 별로 안 든다. 매장에서 왠 손님이 이상한 어거지를 부리면 네 죄송해요 손님.이러면서 져줘야 한다. 안 그러면 매니저한테 손님한테 그게 무슨 태도냐며 혼난다.
모두가 질좋고 빠르고 저렴한 서비스를 제공해야된다. 모두가 질좋고 빠르지만 저렴한 노동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일하고 있지 않을 때, 내가 돈을 쓸 때는 참 좋은 대우를 받고 있지만
내가 돈을 벌 때는 사람 취급 당하는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돈을 버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돈을 쓰는데 할애할 시간은 많지 않다.
빠르고 질좋고 저렴한 서비스를 제공해야하기에 더더욱 더 돈버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뿐이다.
오히려 서로가 상대방의 쉴 공간을 인정해주고, 서비스가 좀 느려도 이해해주면, 상대방도 내가 쉴 시간을 존중해준다. 내가 겪은 영국은 그래서 살기 좋은 나라이다. 뭐 최첨단 기술이 어쩌고 이런거 하나도 없다. 집도 후지고 아직도 이중창이 없는 집이 넘쳐나고, 지하철도 후지다. 개개인의 생활수준을 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누리고 사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국이 더 살만하다. 그것은 이 곳 사람들이 돈이 많아서라던가 복지가 좋아서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영국사람들은 없어도 없는대로 살 줄 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일 낮의 거리에 과하게 꾸며입은 여자를 찾기 힘들다. 오히려 화장 한 여자보다 안 한 여자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추천해준 레스토랑에 갔는데 뭔가 삐까뻔쩍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낡아서 이게 뭔가 싶기도 하다. 경력이 몇년이나 되었는데도 다른 사람이랑 하우스쉐어를 해도 부족한 줄 모르고 산다. 질 좋은 옷 없고 이게 굴러가기는 하나 싶은 똥차를 몰아도 부족한 줄 모른다. 집에 이중창이 없고, 난방이 빵빵하지 않아도 그러려니하고 살아간다. 내가 돈을 내는 입장이기에 왕대접을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서비스의 질이 좋지 않아도, 그러려니하고 살아간다. 그 사람들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준다. 집에 온 수리공도 기분이 안 좋거나 바쁜 날이 있는 것을 인정해준다. 버스기사에게 크리스마스 휴일이 필요함을 인정해준다. 상대편의 서비스가 필요하면, 상대방이 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지 미리 확인해서 약속(예약)을 잡는다. 그게 다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영국이 선진국인 이유는, 개개인이 최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가 누려야 할 것을 존중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최고만을 원한다.
공부도 최고, 서비스도 최고, 외모도 최고, 능력도 최고.
최고가 아닌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길거리에 나가면 어여쁜 여자들이 넘쳐난다. 다들 예쁘게 꽃단장하고 있다.
그 어떤 가게를 가도 내부는 환하고 깔끔하다. 피씨방 노래방조차도 호텔급이다.
길에 다니는 차들도 다들 큼직큼직하고 새차같이 번쩍번쩍하다.
아이들은 모두 학원과 과외를 다니며 좀 더 나은 점수를 받으려고만 한다.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 고민하는 건 이력서를 어디에 넣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그렇게 모든게 다 최고인데, 최고의 삶을 누리지는 못한다.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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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제로섬게임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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